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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하루

독서유랑, 이상의 집

늠름 2016.07.29 23:50
공부 말고 이상을 스스로 마주했던 적이 언제였을까. 그리고 서촌을 느슨하게 걷는 것도 오랜만이다. 책읽는지하철의 독서유랑단에 참여했다. 7월은 시 유랑. 비가 촉촉한 날, 사람들과 마주앉아 시를 읽었다.

이상이 두 살부터 스무 해 가량 살았다던 집, 이상의 방으로 짐작되는 자리에 앉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시를 읽고 나누고 캘리그라피를 배웠다. 사람들이 모이니 시집 한 권에서도 저마다 고른 시가 같고 또 달랐다. 하나의 시에서도 마음이 닿는 곳이 같고 또 달랐다. 모더니스트, 천재와 같은 수식어로 인해 실은 온전히 마주하지 못했던, 시마다 머물렀을 그의 감정을, 풍경을 생각했다.

꽃나무를 다시 읽었다. 몇 해 전 어느 밤에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 갈 수 없는 나무와 달아나는 나의 모습이 서글펐었다.  마음이 느슨한 오늘은 '그럼에도'를 혼자 덧붙여 생각하며, 열심으로 꽃을 피우는 나무에 눈이 오래 닿았다.

서촌은 자분자분 걸을 수 있는 작은 길들이 많아 좋다. 옛 시인과 소설가와 화가들이 머물렀을 어느 공간을 쓰다듬는 마음도 좋다. 회사가 서촌이라 동네처럼 머무르는 일이 좋으면서도 일에 마음만 분주해서 잘 살피지 못했다. 오늘은 일 말고 느지막히 나와, 늘 스치던 이상의 집에서 잔잔히 시 읽는 시간이 좋았다.

이상의 집은 재개관을 준비한다고 했다. 가을이 되면 마음에 여유가 좀 더 붙을까 생각도 해보며, 도서관에서 빌린 평전을 마저 읽고 와서 오래 머물러야지, 혼자 작은 약속을 해본다.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열심으로 생각하고, 꽃피우고, 마음을 다해, 살고. 이 여름도.

2016.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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