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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소설집, 『감기』, 창비, 2007.

「구멍」

ㅡ "내가 공장에서 무얼 만드는지 알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 했지만 이상하게 고개가 움직이지 않았다. "지우개를 만들면서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았단다. 그건 잘 지우는 거란다." 아버지는 리모컨을 눌러 텔레비전을 껐다. "그런데, 솔직히, 잘 지워지지가 않아." (26쪽)



2008.2.12.


감기가 깊어가는 가운데 윤성희 씨의 소설집 <감기>를 읽었다. 윤성희 씨의 소설은 언제나 좋다. 말을 아끼고 골라서 조심스럽게 하는 문장이 좋고, 난쟁이 같은 사람들이 절망을 이겨내는 방식이 좋다. 일상적인 시각으로 볼 때 울고불고 땅을 쳐야 할 일을 소설 속 인물들은 덤덤하게, 무던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눌린 삶의 무게를 자기들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요리를 하거나, 여행을 하거나, 낯선 이들과 어울리거나, 쓸모 없는 물건들을 모으거나, 도서관에서 책의 198쪽만을 읽고 생각하거나, 사물들에 이름을 붙이거나, 밥을 먹거나, 동전을 모으거나, 선물을 하거나…… 아주 소박하지만 그러나 특별한 방법으로 이겨나간다. 아파도 유머러스하게 툭툭 말하는 여유가 참 부러웠다. 소설 속 인물들을 보면서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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