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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에 오랜 시간을 앉았다. 발길이 적은 뒤쪽 한곳에 오래 앉아 흐드러지게 열린 감을 보고 단청을 하지 않은 서까래를 보고 혼자 놓인 작은 아기 꽃신을 보고 노래를 들었다. 일곱 시가 되고 문을 닫을 때까지 조용히, 가만히, 납작히, 오래 앉았다.

마음이 바닥에 앉았다. 아버지를 만나려고, 자전거를 타려고, 사람을 만나려고 기다리던 시간이었는데, 문득 마음이 다 바스라지는 것 같았다. 회복되지 않은 마음으로 찾고 싶지 않았다. 

우울의 때를, 인정하자. 부정하면서 힘들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인정하자. 침잠하는 시간을 수용하자. 그리고 회복하자. 바닥에 더 앉지 않으려 걷는다. 걷고 걷고 헤매는 시간이, 이래도 괜찮을까 싶을 만큼, 길어지고 있었다. 생각을 돌리려 낯선 길을 찾았다. 오래 걸어도 돌아온 곳은 앉은 내 마음이었다. 

나의 지반이 단단하지 못해 몇 글자에, 목소리에, 허물어졌다. 이럴 때 더 가야 한다는 마음과 서로의 약함을 마주하기 버거운 마음이 서로 밀었다. 스스로, 독립적으로 산다 생각했다. 나는 독립적이지 못했다. 나의 약함을 당신에게 투영하고 있었다. 아팠던 당신의 시간을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나를, 그러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나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빴다. 나는 자격이 없다. 

한낮의 우울을 샀다. 대학생 때 어느 실마리를 얻고 싶어 읽었던 책이 요사이 생각이 많이 났다. 다시 읽겠다 했는데, 읽고도 싶고 읽지 않고도 싶어 망설인다. 객관적인 거리로 철저히 주관적인 시간이 다시 필요했다. 더 망설이지 말자, 더 가라앉지 말자, 생각한다. 시간의 회복이 더디어 조금 아프다. 


2016.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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