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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갖고 싶었다. 만 원에 네 장 하는 캔버스천 에코백을 사고 수를 놓았다. 가까이서 보면 엉성한 간격에 허술하지만 듬직한 코끼리 하나 곁에 둔 것 같아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괜찮았다. 옛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버스에 앉아 코끼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옛 시간들을 생각했다.

조금씩 꼬물거리는 일로 진득한 시간을 갖는다. 바스라진 마음을 주워 모은다. 흐트러진 마음을 찬찬히 가다듬는다. 앨리스의 실수로 달걀 장군이 바닥에 떨어져 바스라진 장면이 있었다. 체스 장병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장군의 얼굴을 짜맞추었다. 합체되고 회복된다. 돌아간다. 우습게도 엉뚱한 때에, 보름 전 보았던 영화의 작은 장면이 문득 떠올라 마음을 다독였다.

옛 친구를 두 번째 만난 날. 어제는 카페 소사이어티를 보았고 두부와 강된장을 먹고 정동길을 조금 걷고 헤어졌다. 친구는 더 단단해졌고 편안했다.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일들로 오르고 내리는 시간을 보냈는지 지난날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라졌는지, 실은 많이 묻고 많이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나는 자꾸 조심스러워 속으로 생각만 하다가 별 쓸데없는 말들만 했다. 아주 위태로웠고 약했던 나의 한때를 가까이서 묵묵히 보아준 친구를, 지금도 위태로운 어느 날들을 살아가지만, 그래도 나는 조금은 더 건강한 모습으로 마주하고 싶었다. 잘 지내고 있다고,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지 못했다. 지난날 나는 어렸고 스스로가 버거워서 그래서 오래 미안했다고도 말하고 싶었다. 이 시간이 그리웠다 말하고 싶었다. 다시 만나 많이 고맙다 꼭 말하고 싶었다. 말하지 못했다. 못다한 말이 많아 집으로 돌아와 마음이 묵지근했다.

꿈은 꿈이었다 말하며 서로의 시간을 각자의 자리에서 아련히 또 덤덤히 흘려보내는 사람들의 눈빛. 영화가 끝났고 못다한 말들은 어디로 흘러갈까. 어딘가에 닿을 수 있을까. 우리는 또 보게 될까. 다시 마주하고 웃게 될까.


2016.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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