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고/하루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이성복 시인의 '그 여름의 끝'을 좋아한다. 한 차례 두 차례 폭풍에도 넘어지지 않은 나무백일홍의 이야기. 여름의 끝에서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하고 끝나는 담담한 구절이 좋았다.

조금 오래 한 고민이 있었다. 쥐지도 놓지도 못하다가 거리를 조금 두어보자고 생각했다. 시간과 거리에 비례하는 무언가가 나오길 바라보지만. 모르겠다. 갈팡질팡한 생각이 간지럼에도 파르르 떠는 나무백일홍 같았다. 넘어지지 않은 나무백일홍을 믿어보기로 했다.

-----


그 여름의 끝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이성복, "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사, 1990

'쓰고 >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2) 2016.01.09
바람을 쐬고 싶었다.  (0) 2016.01.09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0) 2016.01.09
서촌  (0) 2016.01.07
시와 하우스 콘서트 '겨울을 건너' @스푼하우스  (2) 2016.01.05
필사  (0) 2016.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