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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모임 여섯째 날. 책 이야기 생각 이야기 사람 이야기 고민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시간이 좋다. 보통 끝나던 시간보다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긴 이야기에 못 맺은 생각을 혼자 잇다가 두 정거장을 네 정거장 지나서 내렸다. 지나온 만큼 걸었다. 봄이 오셨다는데 아직은 툭툭 터진 손이 아렸다. 베껴쓴 이야기에 사람이 생각나서 속도 조금은 아렸다.

만약에, 조선후기에 내가 태어났다면 삯바느질하고 이야기책 필사하며 생계를 이었을 거라고 혼자 생각했던 날이 있었다. 김숨의 바느질하는 여자를 읽는다. 한 땀 한 땀, 곡절이 많은 삶이다.

영천한복 여자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사십 년만에 만났다. 어머니에게 입히려고 활옷을 지었다. 옷은 다 지었는데 어머니의 삼일장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을 잃고 꿈을 꾼다. 얻는 일보다 잃는 일의 시간이 빨라 슬프다. 엄마가 되어주었던 당신들을 생각했다. 나는 감사하고, 죄송하다. 죄송하다.

"날이 금세 어두워졌지. 오징어 먹물처럼 차오르는 어둠 속으로 아른아른 떠오르는 불빛이 있어서 그 불빛을 똑바로 바라보고 걸어갔지. 비구니들이 모여사는 절이었지. 사연을 듣고는 어린 게 불쌍하던지 절에서 살라고 했지. 그곳에서 잔심부름 해주고 밥 얻어먹으면서 비구니들을 엄마라고 부르면서 살았지. 비구니들이 글자도 가르쳐주고 바느질도 가르쳐주었지. 일흔이 넘은 주지를 엄마라고 부르며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엄마가 여섯이나 생겼는데도 날 낳아준 엄마가 그리웠지. 비구니 엄마 여섯이, 낳아준 엄마 하나를 못 당해냈지. 비구니 엄마들 속에 파묻혀 살면서 엄마가 보고 싶어서 찔끔찔끔 울었지. 간장 항아리 뒤에 숨어서 울고, 사리탑 뒤에 숨어서 울고. 요즘도 심란한 일이 있으면 꿈을 꾸지. 죽어서도 꿈을 꿀 것 같지. 죽어 땅속에 들어가서도 꿈을 꿀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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