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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하루

동화 같다지만 어느 하루는 디즈니처럼 명랑해도 좋잖아요

아리스토캣(The Aristocats)

1970년에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아리스토캣>은 고양이 가족의 모험영화이자 음악을 즐기는 고양이들의 뮤지컬입니다. 파리의 대저택에서 귀부인의 사랑을 담뿍 받는 고양이 가족이 있습니다. 우아한 엄마 고양이 더치스는, 개구진 아기 고양이 마리, 툴루즈, 베를리오즈가 품위 있는 고양이로 자라나도록 가르치며 보살핍니다. 툴루즈는 쫀득한 발바닥으로 그림을 그리고, 베를리오즈는 통통 피아노를 치고, 반주에 맞추어 엄마 더치스와 마리는 노래를 하며, 예쁘고 따뜻하기만 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노래 : Scales&Arpeggios]   https://youtu.be/txx9D-8ubdg

어느날 귀부인은 유언장을 씁니다. 재산의 첫 번째 상속자는 고양이 가족이지만, 고양이 가족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집사 에드가에게 재산이 상속될 것이니 고양이들을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을 하려 하지요. 그러나 유언을 끝까지 듣지 않고 반쪽만 들은 집사 에드가는 배신감을 느끼고 고양이들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시골 강둑에 갖다 버립니다.

험난한 세상이라고는 한번도 겪지 못한 더치스와 아기 고양이들의 모험은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길을 헤매던 중 만난 방랑 고양이 오말리는 고양이 가족이 파리로 도우며 더치스와 사랑이 빠집니다. 오말리에게는 의리 하나로 똘똘 뭉친 뒷골목 고양이 친구들이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날 밤, 긴 여정에 지친 더치스와 아기 고양이들을 집으로 맞은 고양이 친구들은 흥겨운 재즈로 황홀한 전야제를 선물합니다. 고양이 재즈 밴드의 노래에 아기 고양이들은 신이 나서 엉덩이를 들썩이고, 우아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엄마 더치스도 리듬에 몸을 맡기고 스윙 댄스를 함께 추는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럽지요.

[노래 : Everybody Wants to be a Cat]   https://youtu.be/4rrXR6n0RTY

영화제 사무국 마당에서 고양이 가족을 우연히 만나고, 어쩌다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긴 지 삼 년차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 집에는 고양이 식구들이 생겼고, 자연스레 고양이 덕후가 되어갑니다. 고양이가 나오는 영화들을 챙겨보던 중 알게 된 애니메이션입니다. 디즈니답게 명랑하고, 마냥 미소 짓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지난 여름과 가을, 사무국 마당에는 야옹이와 아기 고양이 넷이 지냈습니다. 아기 고양이들은 쑥쑥 자라며 꾸러기들이 되고, 엄마 고양이 야옹이는 몸집이 부쩍 불어난 아기들을 품고 젖을 먹이며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살뜰하게 돌봤습니다. 팀장님 한 분이 재활용 상자로 놀이터를 만든 날, 사람에게는 늘 새초롬했던 야옹이가 일명 사이드 스텝, 아기들이 옆으로 뛰어오르는 놀이를 하며 숨바꼭질을 하는 아기 고양이들 틈에서 깡총깡총 함께 놀았습니다. 사람의 염려로 밥을 든든히 먹이고 잠자리를 신경쓰며 챙겨도, 낚싯대 장난감을 열심히 흔들어도, 사람의 마음으로는 가닿을 수 없는 자리. 같은 종으로서, 고양이들만이 서로 채울 수 있는 자리. 고양이들만의 유대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엄마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들의 뜀박질이 예쁘고 또 애틋해서, 그날 하루를 마음에 오래 담았습니다.

고양이 가족이 떠나고 또 새로운 고양이가 밥자리에 찾아옵니다. 안방처럼 마당에 누워 오후 내내 졸다가 해질 무렵에야 일어나기도 합니다. 집에 사는, 이제 한 살 된 꾸러기 고양이들은 간밤에 서랍을 다 열어놓거나 부엌에 걸어둔 앞치마를 침대까지 끌어다 놓고 대자로 뻗어 쿨쿨 자고 있기도 합니다. 길친구들은 지난 밤 무얼 하며 쏘다니고 피곤했을지, 집에 사는 꾸러기들은 밤새 무슨 작당을 벌였을지, 고양이 그들끼리만 아는 비밀이겠지요. 궁금하면서도 한편 비밀스런 친구들의 시간과 공간을 지켜주고 싶기도 합니다. 저희 집에서는, 혹시나, 출근한 사이 옆집 지붕 고양이 초대하고 냉장고 열어 캔맥주 꺼내려다가 눈치 없이 일찍 퇴근한 사람이 밟는 계단 소리에 짜증을 내며 해산을 외칠지도 모르지요.

늦은 밤, 빈 골목을 총총 걷는 길고양이를 마주합니다. 가만 멈추고, 바쁜 고양이의 밤을 상상합니다. 차도를 잘 건너는지 신경쓰여 눈이 오래 머물기도 하고요. 닭고기 간식 한두 개를 가방에 담고 다니다가 사람을 알아보고 애옹 우는 친구에게 슬쩍 놓아주기도 합니다. 밥으로든 무엇으로든 잠시 스치는 곁이 되어 봅니다. 허기를 채우고, 집으로 혹은 또다른 세상으로 다시 총총 길을 낼 수 있도록요. 동화 같다지만 어느 하루는 디즈니처럼 명랑해도 좋잖아요, 아리스토캣 고양이 친구들처럼, 그들의 세상을 지키고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요.

 

- JIMFF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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