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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하루

일기예보 위젯에 그리운 곳 날씨를 띄워놓고 가끔 살핀다. 여기는 이렇고, 거기는 그렇구나, 어느 날씨를 계절을 공기를 사람을. 제주는 내내 비가 없다. 덥고 습한 공기가 훅훅 올라올 그곳의 한여름을 생각한다. 아버지는 아프다고 한다. 아버지는 괜찮다고 한다. 아버지는 늘 그렇지 한다. 나는 식사를 묻는다. 나는 병원에 가셨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른 말을 할 줄 모른다. 나는 매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 하는 일이 없다. 나는 매번 울음을 참지만 들..
독서유랑, 이상의 집 공부 말고 이상을 스스로 마주했던 적이 언제였을까. 그리고 서촌을 느슨하게 걷는 것도 오랜만이다. 책읽는지하철의 독서유랑단에 참여했다. 7월은 시 유랑. 비가 촉촉한 날, 사람들과 마주앉아 시를 읽었다. 이상이 두 살부터 스무 해 가량 살았다던 집, 이상의 방으로 짐작되는 자리에 앉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시를 읽고 나누고 캘리그라피를 배웠다. 사람들이 모이니 시집 한 권에서도 저마다 고른 시가 같고 또 달랐다. 하나의 시에서도 마음이 닿는..
달 그리고 시 "네게서는 달의 냄새가 난다.너는 걷고 걷고 걷는다."황인숙 시인의 '밤길'. 달의 냄새가 난다는 시를 생각했다. 달밤 꿈에 걸은 발자국에 돌길이 반은 모래가 되었다는 김옥봉의 한시도 생각했다. 가로등이 달 같은 밤. 자박자박 걷다 들어올 걸 그랬다. 글자를 아껴 감정을 담는 시를 닮고 싶은 날이 많았다. 시 같은 글을 동경했고 시 같은 마음을 동경했다. 말을 아껴야 하는 날. 감정을 아껴야 하는 날. 그리고 그러지 말아야 할 어느 날도 생각했다. ..
나는 쏟아지고 싶었으나 언 수도처럼 가난했단다 을지로에서 충무로로 꺾는 길, 시그니처타워 앞에는 뼈만 있는 물고기 동상이 있었다. 그앞을 지날 때마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의 가시고기를 생각했다. 가시만 남아 물고기의 입으로 들어가면 몸 밖으로 바로 나오던 둘리 친구들과, 슬픈 눈을 꿈벅이던 물고기가 어른거렸다. "나는 쏟아지고 싶었으나언 수도처럼가난했단다"박연준의 시, 빙하기를 읽었다. 쏟아질 수 없어 가난했는지, 가난해서 쏟아질 수 없었는지 모른다. 결핍이 있어 허기진 것..
성대신문, 눈이 아닌 손으로 읽는 필사의 세계 아주 작게 필사모임을 이어갔다. 대학 신문에서 인터뷰를 했다. 존재가 미미해서 한참 망설이다가 답장을 보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주절주절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기자의 촘촘한 글에 작은 이야기가 붙었다. 몇 개의 질문 덕분에 나는 왜 좋아할까, 왜 고민할까, 무엇을 하고 싶을까, 자글자글 구르던 생각들을 오래 돌아봤다. 작은 점이라 생각하며 지냈는데, 점을 발견해주는 일이 참 고맙다. 성대신문, 눈이 아닌 손으로 읽는 필사의 ..
상실을 생각했다. 1. 권여선의 소설을 챙기고 나왔다. 첫 문장은 그랬다.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2.데몰리션을 보고 왔다. 상실의 한가운데에서, 상실을 말하지 않지만 실은 모두 상실이었던 이야기. 상실을 이렇게도 그릴 수 있을까. 가끔은 피식 웃기도 하며, 덤덤하게 상실을 마주했다. 삶이 무너지는 증상. 그리고 삶이 무너지지 않으려는 증상을 생각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한다 알고 있었던,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너의 열한 번째 날 오늘은 너의 날. 아주 오래 전에, 여름이었고, 자전거가 한 번씩 사라졌었다. 사라졌다 돌아오는 까닭을 알 수 없었고 나는 화가 났고 며칠 뒤면 자전거가 돌아왔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네가 가고, 창고에서 또 사라졌던 자전거를 찾았다. 네가 타는 모습을 보았다던 어른들의 얘기를 들었고 여기저기 흠집이 난 자전거를 만졌다. 너보다 더 큰 자전거를 타고 몇 번을 넘어지고 두근거리기도 했을 너를 생각했다. 누나 자전거 사 달라는 어린 너의 얘기에 어..
달, 밤 은행나무 가로수에 가로등불이 달처럼 걸렸다. 달이구나, 했다. 한 번 보고 한참 걷고 다시 보고, 그러고 걸었다. 가로등불보다 작고 덜 환하지만 달은 달, 진득한 달이 잘 따라오나 달을 잘 따라가나 하늘을 바라고 걸었다.미지근한 밤공기가 살에 닿는다. 기온만큼 더 걸으려고 발을 딛는다. 나는 조금은 더 기운나는 사람이고 싶었다. 땅을 더 힘차게 박차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달밤에 바람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싶어졌다. 오로지 내 발로 바퀴가 구르는 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