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고

떠나온 사람에게만 돌아갈 곳 있으니 허약한 뿌리가 어쩌면 어느 곳이든 발 딛고 사는 동력일 수도 있었다. 떠나온 사람에게만 돌아갈 곳 있으니. 하림의 노래를 들으며 어느 순서를 생각했다. 돌아갈 곳이 있어야 떠날 수 있지 않을까. 돌아갈 곳이 없어서 떠나는 걸까. 무엇이 먼저일까. 닭과 달걀 같은, 그런 생각들. 버스를 탔고 익숙한 곳을 에둘러 비껴난 길을 지났다. 창밖을 훑다가, 노래와 풍경의 간극처럼 발딛은 곳이 가깝고 또 멀었다. 2016.5.28.
풍덩 빠지지 못했다. 스폰지하우스가 문을 닫았다. 정 붙인 곳들이 손에 꼽혀서일지 오래 허했다. 아끼는 것들은 왜 자꾸 사라질까. 퇴근길에 들를까 하다 몇 번 발을 돌렸던 일을 후회했다. 더 아끼지 못한 탓도 있는 것 같아 발을 돌리는 길이 적적했다. 정을 너무 붙이지 말라고도 하고, 그럼에도 충분히 사랑하라고도 하고. 사라지는 것을 두고, 마음을 보호한다는 여러 방법들. 그럼에도 편으로 마음이 기운다. 서둘러 마음을 떼는 일은 서글프다. 쓸쓸하다. 아프다. 그럼에도 기..
필사모임 한 시간 반 정도 책을 읽으면 입이 심심해진다. 형연 씨가 오렌지를 갖고 오고, 동영 씨가 사탕을 나눴다. 향긋하고 달콤하게, 향으로 맛으로 읽는 시간이 됐다. 2016.4.7.목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 필사모임 @합정 허그인
동사의 맛 동사의 맛(김정선, 유유출판사)을 읽고 있다. 가려내다, 갈라내다. 두 낱말을 엮어서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풀었다. 풍경에 눈이 시렸다. 낱말들이 엮이어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는 결국, 삶. 살아가는 일.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당신의 이야기를 알고 싶어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한다. 2016.3.31.
광합성 게스트하우스 손님과 우연히 또 만나 친구가 됐다. 도란도란 얘기를 하다가 어떤 모습일 때 스스로 예쁘다 생각해요, 질문을 받았고, 그러게요, 언제일까요, 서로 웃다가 둘 다 답을 못했다.그러게, 언제일까. 혼자 남아 곱씹었다. 볕을 쬐다가, 초록색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소낭밭에 앉아 광합성 한다며 재잘거렸던 어린 날을 생각했다. 푸르딩딩하고 짜리몽땅한 게 꼭 너희라고 동백나무를 말하던 지리 선생님도 생각이 났다. 파릇한 양말을 벗 삼아 풍경에 스몄..
감정 김소월의 '님에게'를 한참 들었다. 김정화와 하림의 목소리. 음절을 꾹꾹 딛는 목소리. 잃어버린 설움이외다 하고 혼자 부르곤 했는데,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었다. 잃음과 잊음을 생각했다. 잃음을 잊음으로 딛는 것이, 덜 아플지도 모르겠다. 감정을 시인하는 일이 어려웠다. 마주하지 못하고 비스듬히 비껴난 때가 많았다. 잃는 일도 잊는 일도 두려웠다. 괜찮았고 괜찮지 않았다. 잘 지내고 잘 지내지 않았다. 허정허정 걸으며 내 시간을 살았다. 어디에도 닿..
작은 위안 검색창을 열었더니 춘곤증 물리치는 체조가 상위 검색어에 나왔다. 봄은 봄이구나. 무언가 검색을 하려다가 머리가 하얘져서 아아아 두들겼더니 아아아아아아- 길게 이어진 자동완성 검색어가 첫 번째로 떴다. 나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구나 하고 작은 일에 왠지 위안을 받는 내 마음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얻는 위로와 위안과 공감이 실은 별일이 아닌데, 차곡차곡 포개져 내 안의 별일이 될 수 있어 다행이다.2016.4.3.
이문재, 봄날 종이컵에 낙서하는 버릇이 붙었다. 갖고 간 책이 잘 안 읽혀서 딴생각을 하다가 낮에 읽은 이문재의 '봄날'을 베껴적었다. 사무실 목련나무가 벙글기 시작해 생각이 났다. 고운 시를 읽었는데, 따끈한 계란탕에 밥 말아먹고 싶다는 생각이나 하고 앉았다. 이렇든 저렇든, 순한 봄밤을 바라는 시간.2016.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