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석, 선우사(膳友辭) 백석, 선우사(膳友辭)- 함주시초 4낡은 나조반에 힌밥도 가재미도 나도나와앉어서쓸쓸한 저녁을 먹는다힌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은 그무슨이야기라도 다할것같다우리들은 서로 믿없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우리들은 맑은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긴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탓이다바람좋은 한벌판에서 물닭이소리를들으며 단이슬먹고 나이들은탓이다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소리배우며 다람쥐동무하고 자라난탓이다우리들은 모두 욕심이없어 히여젔다착하디 착해서 세괏은 가시..
백석,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백석의 시가 기억나 찾아 옮겨 적었다. 시를 읽은 밤, 일을 조금 일찍 마쳤고 사람들과 얼굴 마주하고 밥을 먹고 웃고 노래하고 밤길을 오래 함께 걸었다. 잠이 오지 않아 방청소를 하고 창을 활짝 열고 매미소리 풀벌레 소리를 한참 들었다. 탓, 낱말에 온기가 돌았다. 밤의 소리와 풀냄새와 이런 저런 풍경과 사람과 마음 같은 것들을 어느 탓으로 여겨보았다. 문득, 이따금, 나는 나의 몫으로 살고 있을까, 내 자리가 어딜까, 이렇게 살아도 될까, 나는 무..
나는 쏟아지고 싶었으나 언 수도처럼 가난했단다 을지로에서 충무로로 꺾는 길, 시그니처타워 앞에는 뼈만 있는 물고기 동상이 있었다. 그앞을 지날 때마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의 가시고기를 생각했다. 가시만 남아 물고기의 입으로 들어가면 몸 밖으로 바로 나오던 둘리 친구들과, 슬픈 눈을 꿈벅이던 물고기가 어른거렸다. "나는 쏟아지고 싶었으나언 수도처럼가난했단다"박연준의 시, 빙하기를 읽었다. 쏟아질 수 없어 가난했는지, 가난해서 쏟아질 수 없었는지 모른다. 결핍이 있어 허기진 것..
캐롤, 손과 등 1.금요일 밤, 캐롤을 보고 왔다. 어쩌면, 영화 자체보다 영화 보고 집까지 타박타박 걷는 길을 나는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에 오고 나서 시간을 얻었다. 책과 영화를 조금 더 가까이 두고 살았다. 타인의 이야기가 내 행간이 되길 바랐다. 내가 조금은 더 북적이길 바랐다. 영화가 끝나고 밤 열두 시, 붐비던 신촌길이 한산했다. 좋아하는 머플러를 둘렀다. 봄을 부르는 겨울비가 촉촉했다. 오늘의 걸음에, 시청에서 광양을 걷던 어제..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이성복 시인의 '그 여름의 끝'을 좋아한다. 한 차례 두 차례 폭풍에도 넘어지지 않은 나무백일홍의 이야기. 여름의 끝에서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하고 끝나는 담담한 구절이 좋았다. 조금 오래 한 고민이 있었다. 쥐지도 놓지도 못하다가 거리를 조금 두어보자고 생각했다. 시간과 거리에 비례하는 무언가가 나오길 바라보지만. 모르겠다. 갈팡질팡한 생각이 간지럼에도 파르르 떠는 나무백일홍 같았다. 넘어지지 않은 나무백일홍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병률, 새날 듣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는다. 나는 왜 이러고 있나 생각이 많아지는 밤. 생각이 너무 많이 스며서 내 허리도 휘었나 보다.
설움과 입을 맞추는 것 김수영의 시, 거미생각을 오래 했다. 결국은 혼자만의 생각이어서 발전할 것도 맺을 것도 없는 생각이었지만.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를 오래 생각하다가, 내 잘못을 생각하다가, 서러운 생각이 일었다. 아무래도 이 생각은 옳지 않은 것 같아 생각하기를 멈췄다. 서러운 것은, 바람이 있기 때문이란다. 바라지 않으면 서러울 일도 없었다. 바람, 바라지 않음. 반의관계이지만 그 사이 촘촘히 채워진 명명하기 어려운 감정들. 바라지 않으면 맺어지는 단순한..
이병률, 찬란 호흡을 가다듬는 시가 있다. 마음을 다독이는 시가 있다. 한 구절 한 단어, 마디마디 담긴 의미가 명료하게 해석되진 않아도, 행간에 자간에 마음으로 전해오는 미묘한 떨림이 마냥 좋은 시들이 있어 이따금 시를 찾는다. 생각이라는 것 자체를 내려두고 싶은 순간들이 자주 생긴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도 결국, 생각이라지만. 넋놓고 풍경을 보듯 정서의 풍경에 빠져 몇 번이고 곱씹는 시행의 울림에 위안받고 싶은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시..